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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 소식

(소식지/준비4호) 문화인 노회찬 - 노회찬과 노래(정마리님)

재단활동 2019. 06. 27

(2019.3.21)
 

노회찬 의원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노래

- 정마리(정가보컬리스트)

 


 

"오월의 노래"
https://youtu.be/RjLBMKudAuY

정마리 노래
문승현 작사, 문승현 작곡
조진옥, plus one 편곡
JMGY신지용 녹음
 

노회찬 의원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노래는 '오월의 노래'입니다. 몇 년 전, 5.18 기념식에서 주먹 쥔 손을 높이 들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던 노회찬 의원님 사진을 기억합니다. 하지만 단지 그 사진 때문에 '오월의 노래'를 떠올리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저만의 특별한(?) 사연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제 마음이 노회찬 의원님과 함께 길을 떠나 '오월의 노래'를 만나기까지의 이야기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제가 노회찬 의원님을 알게 된 건 의원님의 '고기 불판' 이야기가 그 시작이었습니다. 그전까지 저에게 정치인의 말이란, 오로지 상대를 흠집 내기 위해서 마구 쏟아내는 독설이거나, 자기 책임을 외면하기 위해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안개 같은 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저의 정치 무관심이 그렇게 단정해 버렸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노회찬 의원님의 구수한 말투와 유쾌한 비유는 정말 특별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가끔 고기를 굽다가 불판을 보고 웃음이 터지기도 하니까요! 그렇게 저는 노회찬이라는 매력적인 정치인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한 친구를 사귀게 되었습니다.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일에 몰두하는 친구였는데 그 친구가 노회찬 의원님과 함께 일을 한다고 하더군요. 그 덕분에 저는 노회찬 의원님과 '고기 불판' 이후 두 번째 고리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그 친구가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혼식에서 노회찬 의원님께서 주례를 서셨고 저는 축가를 불렀습니다. 친구 부부의 앞날을 축복하는 시조창이었는데 그날이 아마 제가 노회찬 의원님을 가장 가까이서 뵌 날이었을 겁니다. 축가를 준비하느라 긴장해서인지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도 의원님의 주례사가 전혀 기억나지 않아서 참 안타깝습니다. 노회찬 의원님은 제 노래를 그날 처음 가까이서 들으셨을 겁니다.
 

또 시간이 흘러 흘러 친구는 변호사가 되었고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습니다. 말도 못 하게 갑갑하고 불합리한 정치적 상황들이 이어졌지만, 그 속에서도 의원님은 항상 웃음 잃지 않으시며 바쁘게 바쁘게 세상 구석구석을 가꾸고 계셨고 저는 열심히 노래하며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제 2016년, 성공회 대성당에서 열린 6월 민주항쟁 29주년 기념식에서 노래를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날의 행사는 유시춘 선생님의 사회로 세월호 희생자 304명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남아있는 가족과 아픔을 함께하는 자리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5.18 기념재단 제작 기념음반에서 제가 참여했던 '오월의 노래1(문승현 작사, 문승현 작곡)'을 리메이크해서 불렀습니다. 그 음반에서 저는 악기 반주를 사용하지 않고 가톨릭 성가처럼 무반주 합창곡으로 편곡하였고 그 모든 성부(part)를 제가 불러서 녹음하였습니다. 5.18 희생자분들을 위한 저의 작은 진혼곡을 드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6월 민주항쟁 기념식 공연에서는 특별히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의 영국 작곡가 William Byrd(1543~1623)의 모테트 Miserere mei(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를 덧붙여 편곡하여 함께 불렀습니다. 80년 5월 광주, 87년 6월 민주항쟁, 2014년 4월 세월호… 슬픔은 쌓이고 쌓였는데 기념음반 속 제 진혼곡은 그 슬픔에 비해 너무나 작아서 무언가를 더 보태야 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에는 제가 사진이나 뉴스에서 뵈었던 많은 분들이 오셨습니다. 운 좋게도 그날 또 노회찬 의원님을 뵐 수 있었고 '오월의 노래'는 노회찬 의원님께서 들으신 저의 두 번째의 노래가 되었습니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 폭풍처럼 드러났던 사건들이 촛불을 밝혔고 거리를 채웠습니다. 춥고 긴 겨울이 뜨겁고 바쁘게 지나갔고 봄이 왔습니다. 이젠 의원님이 꿈꾸셨던 세상에 조금 가까워질 것 같다는 생각에 저도 설레고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오랜 시간 바다 깊이 잠겨있던 세월호는 영화처럼 순식간에 떠올라서 그날을 생생하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동안 우리에게 감추려 했던 어둡고 축축했던 것들이 모두 세상에 드러나서 그것들을 말리고 닦아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더 열심히 연습하고 더 많은 작업을 했습니다. 참 신이 났었습니다.
 

참으로 뜨거웠던 작년 여름, 그러나 노회찬 의원님이 떠나셨다는 뉴스는 '오월의 노래' 가 의원님과의 마지막 노래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알려왔습니다. 아, 서둘러 뒤져보아도 제가 노회찬 의원님과 연결될 수 있는 것이 거기까지였습니다. 의원님께서 남기신 '소연가'를 불러서 힘들고 아파하는 친구들과 나누는 일 외에 제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노회찬이 꿈꾼 세상은 아직 다가오지 않았는데 우리만 남겨져서 어찌 살아야 할지요?

"Miserere mei, Deus"는 "주여,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뜻의 라틴어입니다. 이제 노회찬 의원님은 고통 없는 하늘나라에서 은은한 미소로 우리를 바라보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또다시 아픈 5월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번 제 '오월의 노래'에는 노회찬 의원님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실 것 같습니다. Miserere m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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