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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이 문제다

이슈페이퍼 2019. 04. 25

평등과 공정 1호 다운받기(PDF)

구인회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며칠 전 대표적인 국제경제기구인 세계은행(World Bank),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수석경제학자들이 모여 토론회를 가졌다. 미국 워싱턴 시에서 열린 이 토론회 제목은 “소득 불평등이 문제다”였다. 이들 세 국제경제기구는 1980년대와 1990년대에 걸쳐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이루는데 앞장을 선 조직들이다. 이들 조직에서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0여 년 전부터이다. 선진국들의 협력체인 경제협력개발기구가 불평등 실태에 관한 보고서를 내더니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도 불평등 악화에 대한 우려를 보이기 시작했다. 
 

무엇이 이들을 불평등 해소가 시급함을 내세우는 자리로 모이게 하였을까? 세계은행의 골드버그 박사는 많은 나라에서 불평등으로 인해 사회적 신뢰가 무너지고 정치적 갈등이 증가하고 있다는 지적으로 말을 시작하였다. 프랑스혁명과 러시아 10월 혁명을 거론하며 세계가 유사한 혁명의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는 그의 의견이 이어졌다.
 

사실 이러한 불평등 사회의 위기 징후는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 시절 “월가를 점령하라”는 운동은 소수 금융자본의 탐욕에 대한 대중적 분노를 보여주었다. 미국의 트럼프식 정치, 영국의 브렉시트 운동도 지배 엘리트집단에 대한 하층대중의 불신을 드러낸 사건들이다. 지난 수십 년 간 경제성장의 성과를 독식해온 소수 부유층의 지배 질서, 최상위 1%의 부유층에 의한 금권정치가 이렇게 역풍을 맞이하게 되면서 지배체제 내부에서도 개혁의 필요성이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
 


많은 연구 덕분에 이제 우리는 세계의 불평등 실상을 보다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서구에서는 많은 나라들이 20세기 초반 최고수준의 불평등을 경험하였다. 1차와 2차의 세계대전을 거친 후 수십 년 간 이어진 복지국가 황금기에는 불평등이 급속히 줄어들었다. 그런데 미국에서 레이건이 대통령이 되고, 영국에서 대처 수상이 집권한 1980년대에 신자유주의가 확산되면서 분위기는 반전되었다. 1990년대 이후 지난 30년 가까운 시기 대다수 국가들이 불평등 증가를 경험하였다. 이제 우리는 최상위 1%가 소득의 15%를 차지하고 재산의 50%를 장악한 세계에 살게 되었다. 
 

하지만 불평등의 진단과 전망에 대해서는 의견 차이가 작지 않다. 마르크스(Karl Marx)는 19세기 중반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의 양극화가 필연적임을 주장하였다. 노벨상을 받은 미국의 경제학자 쿠즈네츠(Simon Kuznets)는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불평등이 일시적으로 증가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내 불평등은 잦아들 것이라고 다른 진단을 내렸다. 1950년대에 제시된 이러한 쿠즈네츠 가설에 대해 많은 논쟁이 벌어졌지만, 얼마 전까지도 그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입장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21세기 들어 프랑스 출신의 경제학자 피케티(Thomas Piketty)가 부의 양극화와 세습자본주의의 출현을 주장하면서 불평등 연구에서 지각변동이 이루어졌다. 피케티는 길게는 수백 년에 걸친 소득과 부의 불평등 역사를 분석하면서 최상위층으로 소득과 부가 집중되는 경향이 21세기 들어 최고수준으로 갈 것임을 예상한다. 이러한 불평등에 대한 피케티의 주장에 모든 이가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악화되고 있는 불평등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다수의 학자들이 공감하게 되었다.
 


우리 한국사회의 불평등은 어떠한가? 사실 한국은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국제사회에서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이룬 매우 성공적인 나라로 칭찬을 받았다. 세계은행은 “동아시아의 기적”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동아시아 몇몇 국가들의 산업화를 급속한 경제성장과 공평한 소득분배를 동시에 이룬 드문 사례로 평가하였다. 한국은 그 중에서도 선두를 차지하였다. 당시 국내에서는 한국 경제를 노동자와 농민을 수탈하며 이룬 재벌 대기업 위주 산업화 산물로 비판하는 시각이 많았으나, 국제사회의 평가는 세계은행의 보고서에 공감하는 편이었다. 
 

이러한 시각 차이에는 우리나라의 특수한 역사적 경험이 관련되어 있다. 일제 식민지배로부터 독립한 이후 좌우익의 대립이 노동운동과 사회주의 정치세력에 대한 폭력적 억압으로 마무리되었다. 이 시기에 형성된 노동 배제의 체제는 그 이후 진행된 산업화 기간 내내 근본적 변화를 겪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철저하게 노동을 배제하는 다른 한편에서는 농민을 포용하는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졌다. 해방 후 남과 북의 체제 대립과 경쟁이 격화하면서 우리나라에서는 비교적 철저한 농지개혁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지주계급이 몰락하고 일하는 농민이 토지를 소유하는 소농의 나라가 등장하였다. 한국전쟁의 참화 속에서 대다수 공장과 건물이 파괴되면서 역설적으로 부의 하향평준화가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이렇게 1950년대에 봉건적 지배세력과 신분제적 질서가 완전히 소멸하고 재산의 재분배가 이루어지면서 한국에서는 평등한 근대화의 기초가 마련되었다. 땅을 얻은 소농들은 자녀들의 교육에 피땀을 흘리며 ‘우골탑’ 신화를 만들었다. 빠르게 확산된 대중교육이 산업화로 넓어진 고용기회와 맞물리며 성장과 분배의 상승작용이 지속되었다. 이러한 우리나라의 경험은 소수 지주들의 토지 독점이 산업화 진척에 커다란 걸림돌이 되었고 이로 인한 경제적 불평등이 대중교육의 정체, 고용기회의 제한으로 이어진 남미국가들의 역사와 대비된다.

<그림> 최상위 1% 소득비중의 국제비교 (홍민기(2015)에서 옮김)
 

우리나라의 비교적 평등한 산업화 경험은 소득불평등 지표를 통해서도 어느 정도 확인된다. <그림>에서는 프랑스, 일본, 스웨덴, 미국 네 개의 나라를 대상으로 20세기 초부터 21세기에 걸친 100년여의 기간 최상위 1%집단이 전체소득 중 차지한 몫이 어떻게 변화하였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앞에서 설명한대로 20세기 초반 이들 선진국들은 최상위 1%가 전체소득의 20%를 차지하는 높은 불평등도를 보이다가 양차대전을 거치면서 급속한 평등화가 이루어져 최상위의 소득집중이 10% 아래로 떨어졌다. 그리고 1980년대를 거치면서 다시 불평등이 높아져 미국 같은 나라는 20세기 초반의 높은 수준으로 복귀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에 대해서는 한국노동연구원의 홍민기 박사가 1958년부터 2013년까지 최상위 1%집단으로의 소득집중도 변화를 추정한 결과를 보여준다. 우리나라는 1950년대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최상위 1%가 전체소득의 5% 내외를 차지하는 매우 평등한 분배 상태에서 출발하였다. 그 후 산업화가 본격화되면서 1970년대 중후반까지는 불평등이 높아진다. 1980년대부터는 불평등이 한풀 가라앉다가 1990년대 전반에는 저점을 찍게 된다. 
 

1990년대 후반부터 한국사회의 분배 추이는 세계적인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불평등 악화현상에서 우리가 예외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1990년대 후반을 지나면서 우리나라의 불평등은 아주 빠르게 악화되었다. 2000년대 전반에 최상위 1%의 소득집중도가 10%를 넘어섰고 이제 15%를 바라보고 있다. 과거 한국은 프랑스, 스웨덴 등 평등한 유럽국가에 가까운 위치에 있었지만, 이제는 불평등이 극심한 미국을 향해 빠르게 접근하고 있다. 
 

평등한 성장을 이룬 한국의 예외적 성공은 1997년에 일어난 아시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완전히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위기를 거치면서 전면화된 우리 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으로 소득격차는 해가 다르게 벌어졌다. 탈규제, 유연화 등 시장주의적 개혁이 자리 잡으면서 전체 소득 중 자본의 몫은 늘고 노동의 몫은 줄었고, 노동자 내부에서도 소득격차가 증대하였다. 일하는 자가 땅을 차지하는 농지개혁은 흘러간 과거의 유물이 되고, 이제 집을 사는(live) 곳이 아니라 사는(buy) 것으로 여기는 부동산 투기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과거의 ‘우골탑’ 신화가 ‘스카이 캐슬’ 막장극으로 바뀌면서 교육은 계층상승의 기회가 아니라 계층고착화의 통로로 변하였다. 
 

한국 사회의 불평등 악화는 그 진행 속도가 아주 빠르다는 점에서 증상이 매우 심한 경우에 속한다. 산업화 시기 평등화에 기여한 1950년대 자산 재분배의 약효는 떨어졌지만, 이를 대신할 새로운 재분배 체제가 마련되지 못한 탓이 크다. 선진 산업사회에서는 2차 대전 후 노동운동과 사회민주주의세력이 보수 정치세력과 경쟁하면서 복지국가를 발전시켰다. 복지국가의 전성기에 구축한 누진적 조세체계와 복지제도는 평등 사회를 지탱하는 큰 힘이 되었다. 피케티는 특히 누진적 조세체계의 평등화 기능을 강조하였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 주요 국가들은 양차대전을 거치면서 최고소득에 대한 세율이 80%를 넘을 만큼 누진적인 조세제도를 발전시켰다. 1970년대까지도 다수의 나라는 60~80%의 최고세율을 유지하였다. 1980년대 이후 여러 나라가 최고세율을 낮추었고 그와 함께 불평등이 증가하였다. 하지만 21세기를 맞이한 지금까지도 미국을 제외한 다수의 나라들은 50%를 전후한 최고세율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1975년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최고세율을 70%로 높게 유지하였다. 하지만 정부는 그 이후 최고세율을 낮추기 시작하였고 2009년에는 35%까지 떨어졌다. 박근혜 정부부터는 최고세율을 다시 올리기 시작하여 문재인 정부에서는 42%가 되었지만, 국제적인 기준에서 볼 때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세금 감면이 많고 법인세나 자산소득에 대한 실효세율도 낮아 조세의 재분배 기능이 매우 취약한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불평등을 억제하는 또 하나의 축은 복지제도이다. 유럽의 복지국가들과 복지후진국 미국의 불평등 실태를 비교하면 복지제도의 평등화 기능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앞의 <그림>에서 나타나듯이, 1980년대 이후 복지제도를 크게 축소한 미국에서는 최상위 1%로의 소득집중이 두 배나 증가하였지만, 같은 기간 프랑스와 스웨덴에서는 최상위층으로의 소득집중 증가가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다. 이러한 차이에는 단체교섭, 노동시장 규제, 사회보장제도 등 복지국가의 주요 제도들이 큰 역할을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가 확산되면서 임금불평등도가 악화하여 이제 미국과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매우 높아졌다. 같은 시기에 비정규직이 크게 증가하면서 노동자의 고용불안이 매우 심각한 상태로 되었다. 노동시장의 탈규제와 유연화에 더하여 실업급여, 노후연금 등의 사회보장제도까지 부실해 정부가 재분배로 불평등을 줄이는 기능이 미미하다. 1990년대 후반부터 우리나라가 빠르게 미국형의 극심한 불평등 사회로 접근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의 소득불평등은 1990년대 후반부터 빠르게 증가한 후 2010년대에 들어서는 주춤한 상태였다. 하지만 2015년 이래로 최근 수년간은 불평등이 다시 악화하는 추세로 돌아섰다. 특히 우리나라의 불평등은 최상위로의 소득집중과 저소득층의 지위하락이 동시에 진행되는 모습을 띠어서 더욱 우려스럽다. 불평등 해소정책의 실천을 서두르지 않는다면 우리의 미래는 불평등과 정치사회적 갈등, 저성장의 덫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소득과 자산에 대한 누진적 조세를 강화하여 성장의 과실을 소수가 독식하는 분배제도를 개혁해야 한다. 기초보장의 사각지대를 일소하고 실업급여, 노후연금 등 사회의 안전망을 튼튼히 깔아야 한다. 
 

‘불평등’ 분야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앳킨슨(Anthony Atkinson)은 그의 마지막 저서 “불평등”에서 한 사회의 분배 상태는 그 사회의 주요 세력의 역관계를 반영한다는 지적을 하였다. 그의 말처럼, 현재의 불평등 위기는 탐욕적인 최상위 부유층의 정치적 지배능력을 보여주는 것일지 모른다. 그래서 불평등 위기의 극복은 노동과 진보정치의 성장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미래이다. 문제는 정치다.
 

 

구인회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전 한국사회복지연구회·한국사회보장학회 회장
inhoeku@snu.ac.kr
 

* 노회찬재단 이슈페이퍼 「평등과 공정」은 우리사회 정치, 사회, 경제 분야
쟁점 현안에 대한 핵심 내용과 개혁과제를 담아 수시로 발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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