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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 소식

(소식지/창간준비호) 마지막 선물, 국화 한 송이

재단활동 2019. 06. 27

(2019.4.25)
 

내가 후원회원이 된 이유 - 박창진 회원
 


마지막 선물, 국화 한 송이

- 박창진 회원 (대한항공직원연대 지부장)
 

 

마지막으로 드릴 수 있는 것은 국화 한송이 뿐이었다.
 

누군가의 아픈 마음과 사정을 아는 공감 능력은 누구에게나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또, 설령 그 아픔을 공감하는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타인의 그 곤란한 처지를 돕겠다고 입 밖으로 자신의 생각을 내놓기 까지는 한참 더 어렵다. 이런 대다수와 달리 나서서 돕겠다고 직접 행동으로 옮기기까지의 과정까지 이르는 것은 하물며 어떠 한가? 확언컨대 감히 쉬운 일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것은 진정 용기가 있고 의지가 확실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그들은 종국에 존경을 받아야 하는 사람임이 분명하다.
 

곤경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그 절망의 순간 나를 도와 달라 외치기도 힘들 만큼 힘이 빠져 있을 그 순간에 마치 슈퍼맨 처럼 짠하고 누군가가 나타나서 돕겠다고 자청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을 한다. 하지만, 현실은 잔혹을 넘어 극악하기 마련이다. 드라마는 텔레비전 속에 있는 것이지 현실은 그 드라마 속 세트장이 아니다. 
 

나도 무척 힘든 고비의 순간들이 있었다. 땅콩회항이 그랬고, 그 이후에 이어져서 발생했던 모든난처한 상황들이 그랬다. 특히 2차 가해와 그 누군가가 보냈다는 ‘언니 꼭 복수해 줄게’라는 말을 실천이라도 하는 것처럼 나에게 가해지는 불합리한 상황들은 더 그랬다. 힘겨움은 끝이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때 나를 돕겠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처음에는 의심이 앞섰다. 혹시 나를 이용해서 다른 무언가를 편취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에게서 편취해 갈 것은 눈을 씻고 봐도 없는 것이 객관적으로 분명했다. 오히려 내가 그 사람들을 이용해서 살아남아야 할 처절한 지경에 놓여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들을 믿지 못하는 것은 내 안의 두려움으로 인한 방어 의식이 그 이유였다. 내 안을 장악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타인에 대한 신뢰가 힘들어진 것이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이기심으로 똘똘 뭉쳐서 나만이 피해자라고 세상에서 제일 힘겨운 사람이라주장하며, 도움을 외치는 나의 목소리에 끝까지 반응해 주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오히려 나를 믿고 내가 정말 도움을 받을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려 주었기에 나는 이 잔혹한 생존 게임에서 생존이라는 당연한 삶의 끈을 놓치지 않고 이겨 낼 수 있었다. 그런 분들 중에 유독 더 고마운 분들이 계시다, 그분들 중 한 분이 고 노회찬 의원님이다.
 

처음에 본 그분은 세련된 정치인의 세계와는 멀리 있을 거 같은 동네 아저씨 같은 수더분하고 평범한 분위기를 풍겼다. 내 손을 덥석 잡아주던 그 도톰하고 큰 손은 마치 농부의 손이 이렇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투박했고 거칠었다. 그러나, 그 속에 묘한 따뜻함이 느껴졌다.
 

“박 사무장님 인간에게 인간이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일들로 인해 그동안 힘드셨죠. 많이 외로우셨지요. 다 압니다. 그러나 어깨 펴지고 더 단단해지십시오. 사무장님 잘못이 아닙니다. 누군가 비난을 하더라도 슬퍼 마십시오. 사무장님은 잘못 한 것이 없습니다.”
 

위로가 아닌 진솔한 감정 표현으로 왈칵 눈물이 났다. 그래서 나는 그분을 오랫동안 따스한 온기로 기억했다.
 

그분과 함께 대한항공 본사 앞에서 피켓 시위를 하고 있을 때 우리 옆을 지나가던 차 한 대가 잠시 서더니 창문을 열고, 운전자분이 큰 소리로
 

“박창진 사무장 힘내라!”
 

그때 고 노회찬 의원은 한쪽 손을 높이 들어 

 

“맞습니다. 이런 분들께 많은 응원 주셔야 합니다. 저도 외칩니다. 힘내라 박창진!”
 

그리고, 오늘 나는 그분의 장례식장에 와 있다. 많은 시민들이 줄을 몇 바퀴씩 돌아가며 그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이곳에 와 있다. 그 속에는 교복을 입은 학생도, 아이 유모차를 끌고 온 주부도, 휠체어를 타신 분도 막 직장 일을 마치고 달려온 이도 있다. 그는 지금 이 세상에 더 이상 없다.
 

슬픔이 엄습하나 슬퍼하고 싶지 않다. 그분이 더 오래 우리 곁에서 ‘당신은 잘못이 없습니다’라고 말씀해 주셨으면 좋았을 테지만 말이다.
 

그저 내 두 손에 쥐고 있는 이 한 송이 국화가 내가 그분에게 해드릴 수 있는 마지막 일이라는 것이 안타깝고 애통할 뿐이다. 
 

내가 죽는 그 순간까지 마음 깊이 잘 자리 잡고 있도록 그날 나에게 그분이 전해주신 그 온기를 간직하리라. 그리고 그 누군가 또 벼랑 끝에 서서 홀로 남겨져 있을 때 나도 내가 그로부터 전달 받은 그 따스함 가득한 온기를 꺼내서 다음 사람에게 전해 주리라.
 

그대가 바라보던 곳을 향해 우리는 걸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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